정의의소년 - stumbling toward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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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비엘사 매직. 대단하다 칠레. 일상

칠레 스페인 경기. 주심의 오심으로 에스트라다가 퇴장을 당한 순간부터 이미 경기는 망쳐버렸다. 10대 11로 싸운 경기. 결과적으로 칠레는 졌지만 내용으로 칠레는 이겼다.

초반 주도권은 칠레에 있었다. 이번 칠레의 월드컵 본선 3경기를 모두 지켜봤는데, 개인적 감상으론 칠레를 감히 월드컵 우승 후보로 점치고 싶은 마음. 그만큼 명장 비엘사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칠레의 장점은 탄탄한 조직력, 팀 전체가 하나인듯한 패스플레이와 남미 축구의 정통성을 고집스러우리만큼 이어받은 공격 축구의 정신이다. 개인적으로 남아공 월드컵 경기중 칠레의 3경기가 가장 화끈하고 가장 조직적이고 가장 재밌었다. 반면에 단점은 의외의 역습에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수비력이다. 하지만 스페인전에서 더이상 약한 수비력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집요하고 탄탄한 조직력으로 약한 수비력을 커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칠레가 48년 전 월드컵 4강이란 성적을 낸 뒤로 48년만에 월드컵 첫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2승 1패, 조2위). 12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고, 남미 예선 2위로 통과(1위인 브라질보다 많은 승수, 1점 차이의 승점) 하였는데, 이 모든 게 남미 축구의 진수를 보여준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역량이 아니었는가 싶다.

칠레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빅리거도 없다.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키플레이어, 초신성들이 즐비하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알렉시스 산체스. 88년생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에서 뛰고있는 선수인데,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엄청난 러브콜이 쇄도할듯. 그의 플레이는 테베즈의 집요함과 메시의 발재간, 그리고 카카의 패싱능력을 합쳐놓은듯한 센스를 보여준다. 킥의 정확도와 골게터 성향을 조금만 보태어 기량을 끌어올린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버금가는, 또는 그를 초월하는 세계적인 톱 선수가 될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스카우터들은 그를 눈독에 들여놓고 있겠지만...

칠레의 16강이 기대된다. 비록 스페인에 졌지만, 감독 싸움에선 이미 비엘사가 초특급 명장, 델 보스케 감독을 처발랐다. 브라질과의 힘겨운 싸움, 그리고 주전 중앙 수비수 2명이 경고 누적으로 브라질전에 못나온다는 악재가 겹쳤지만.. 그래도 기대해본다. 칠레라는 팀의 화끈한 공격축구가 결승까지 올라 진정한 축구의 재미를 대중에게 선사해 주기를.

칠레 국가대표를 응원하겠다. 월드컵 우승하도록. 그것이 내 바람이고 축구팬들에게 각인될만한 가치있는 일이라 믿는다. 칠레의 경기력은 이미 의외의 다크호스의 출현이 아닌, 위협적인 우승후보의 출현을 나타내었다. 건투를 빈다.

음악과 추억 : yiruma - river flows in you 음악

나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음악을 들을때면 항상 처음 들었을 때의 모든 주변의 것을 추억한다.
가령,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년은 맨 처음 친구들과 노래방 갔을 때 부른 노래, 리치의 1집 앨범은 미국 유학가기 직전에 우울한 감정이 뒤섞인 추억, 토이와 브라운아이즈의 모든 앨범은 내 유학 생활을 지탱해준 든든한 힘, 이렇게 음악 외적인 스토리들이 항상 음악과 함께한다. 넬이나 서울전자음악단, 스크립트, 버브, 뮤즈, 킨 등 몽환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밴드 음악들은 버스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거나 공부하다 말고 멍 때리는 시간에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잡다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사라지고 배설되곤 한다.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항상 저마다 노래 실력을 자랑하려고 R&B나 발라드만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 물론 노래들이 좋기도 하지만 그 노래들은 왠지 모르게 추억이 서려있는 기분이 들질 않는다.

감상(鑑賞)하는 음악보단 감상(感想)하는 음악을 더 좋아한다.
물론 음악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것 또한 더없는 즐거움이다. 비트, 리듬, 베이스와 멜로디 등을 나누어 들으며 협화음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가사는 사운드와 톤이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지, 그리고 가사 내용 등등...
그렇게 분석적으로 즐기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음악을 가만히 들으며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을 따라 훑어간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옛 추억의 한 자락을 짚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래와 연관된 추억의 자락을..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장소, 첫 느낌, 당시의 기분과 상황들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듣는 현재 상태에 녹아든다.
그렇게 음악의 추억이라는 자락마다 한올 한올씩 엮어가는 과정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음악 그 자체가 추억이 된다. 이렇게 음악을 들어온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내겐 음악과 추억은 동어반복이 되었다.

추억을 여행하다 말고 지치거나 지금처럼 고요할 때면, 아무런 말없이 속삭여주는 뉴에이지가 좋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 강이 흘러들어 오듯이, a river flows in you.



강우석의 [이끼]? 윤태호의 [이끼]!! 그때의 긴장감이 다시 떠오른다 만화


기사가 떴다. 강우석이 만화를 원작으로 발표한 영화, 이끼 제작발표회.
영화화 된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했던 것은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적인 긴장감을 동적인 영상으로 잘 그려낼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였다. 내가 보기에 윤태호 작가의 '이끼'란 작품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작화 속에 느껴지는 배경의 음산함와 음모론적 시선이 가득한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영상적 아우라를 추구하는 것이 스토리텔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나는 강우석의 '이끼'가 잘 만들어질지 조금은 의문스럽다. 차라리 '강우석보다는 곽경택이나 봉준호가 감독을 맡으면 영화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곽경택의 하드보일드한 영상이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맞물려 어우러진다면, 계획된 서스펜스의 긴장감보다 더 짜릿하고 거친 영상의 스릴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국형인 또다른 대작이 탄생할지도. 그럼 봉준호가 만든다면? 봉준호의 별명은 봉테일, 꼼꼼하면서도 곳곳에 대중친화적인 암시와 상징들을 심어놓는다. 이야기의 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관객과의 호흡을 원활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감독이다. 원작의 메세지를 좀 더 압축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잘 나타낼듯 하다. 하지만, 강우석이 이끼를? 조금은 의아했다. 강우석의 파워는 풍자에 있는 공감성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대중성에 있는데, 강우석의 능력 또는 장점과 원작의 초점이 조금은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작의 깊이와 강우석의 대중성은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긴 하다. 그의 대중성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의 원동력인 '유머'는 이 작품에선 힘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동훈의 '타짜'처럼 유효적절히 각색된 시나리오라면 또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특별하게 각색했다는 얘길 들어보진 못했다. 어두운 스릴러보다는 밝은 배경의 공포를 보여주겠다는 것, 그리고 이영지 캐릭터에 대한 약간의 변화 정도밖엔.. 그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동안 시험 스트레스와 많은 과제,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우울한 나날들의 연속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어서 스트레스도 풀겸 재밌는 만화를 찾았다. 당장 만화방에 갈 수가 없어 인터넷의 웹툰을 보게 되었는데, 걔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윤태호의 '이끼'란 작품이었다. "이끼? 제목 특이하네.." 좀 웃어보려고 옛적에 봤던 와탕카나 야마꼬툰같은 패러디개그 만화나 좀 보려고 했는데, 특이한 이름에 이끌려 이 만화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한 편 한 편이 흡입력이 대단한 게, 작가가 보통 베테랑이 아니란 걸 느꼈는데, 몇시간에 걸쳐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만화를 본지 1년 가까이 되어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만화의 특징들을 얘기하자면, 서스펜스적 요소를 고루고루 투입한 장면들의 긴장감, 뚜렷한 캐릭터,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식들을 마을 이장과 류해국의 대결구도로 이끌어낸 작가의 구성능력 등을 들 수 있다.

음산한 분위기,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데 드러나지 않는 진실, 독자는 알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알지 못하는 위험 등, 이 작품은 끝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방인인 류해국이 은연중 마을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배척감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파헤쳐가는 과정 속에서,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류해국이 되어 작품 속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윽.. 저러면 안되는데.. 저러면 안될 것 같은데... 안돼! 피햇!! 저 나쁜놈의 슈ㅣ발색기.."
만화를 보는 내내 마음 속으로 몇번이나 이랬는지 모른다 나도.

캐릭터가 여럿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 하나 사연없는 캐릭터는 없었다. 모두가 역사가 있고 추억이 있고 나름의 방식과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캐릭터들이 면대면으로 만나 상황이 발생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장과 류해국의 전략적인 암투, 마을 사람들의 대응방식, 검사와 류해국의 입체적인 관계변화, 이영지의 미스터리한 측면 등등...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만큼 많다. 작가는 캐릭터에 대한 구성을 치밀하게 짜놓았는지, 상황적 측면에 대한 대사들이 일품이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건 위기에 빠진 류해국이 병원에서 경찰에게 법조항을 들먹이며 말빨로 후려쳐주고 검사에게 직접 통화를 걸어 대응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면서도 류해국의 결벽증적인 특성을 아주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만화의 내용이다. 만화라고 하기엔 여느 문학이나 철학 못지 않은 작가의 사상이 담겨있다. 전쟁과 종교, 선악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는 현실, 부정부패에 맞서는 신념, 부정부패에 맞서는 신념을 이용하는 부정부패, 그리고 힘의 논리.. 류해국이나 검사, 마을 이장, 또는 류해국의 아버지(류목형) 등의 모습이나 대사들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힘의 논리로 풀어놓은 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마을 단위로 압축하여 나타낸 점이라 할 수 있다. 만화를 본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만화를 다 보고난 뒤의 느낌은.. 나쁜 놈은 확실한데, 착한 놈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고 이유가 분명하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상황적 변명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우리 사회의 윤리규범적 틀이나 법적 틀에서 봤을 때, 선(善)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내용들이 다수 있다. 마지 꽈배기처럼 배배꼬인 입장과 입장들의 갈등이 낳은 상황 속에 탄생하는 것은 오로지 악(惡) 뿐이라는 현실적인 명제를 부여받은듯 하다. 내가 만화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태초에 신념이 있었고 또다른 신념에 이용되니, 진실을 들추어 보면 남는 것은 악 뿐이다."

만화를 다 보고나서, 참 만화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이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강한 생명력? 습지에 자라는 음습한 습성? 잎과 줄기가 명확하지 않음? 왠지 떼어버려야할 것 같은 암적인 존재의 번식? 만화 한번 보시라.. 이끼라는 특성이 어찌도 만화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지, 보고나서 절실히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끼'라는 만화, 한 번쯤은 꼭 볼만한 만화다. 강추다 강추.




------------------이하 스포일러 포함-------------------









갈등의 시작은 류해국의 아버지인 류목형과 이장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류목형의 전쟁경험, 살인, 사이비적인 종교활동과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초인적 경향은 뭇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발산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것이 마을 이장이니, 그는 신이 되려는 류해목을 여지없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런 그를 정신적 인질로 삼아, 평생 자기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이용도구로써 류목형을 '사용'한다. 류목형이 죽고, 화룡점정을 찍으려는 찰나, 류목형의 아들 류해국이 자기네 마을로 와서 살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눈엣가시같은 존재로 느껴졌을까? 이질감을 느낀 류해국이 미스터리한 마을의 진실을 파헤쳐 가며, 진실은 하나 둘씩 밝혀진다. 이장의 악행에 대하여... 하지만 류해국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진실까지는 알지 못한다.(그런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랑 같이 안살았던가?했고 마지막에 이장도 명확하게 류목형에 대해 얘기 안해줬으니..) 자기 아버지도 결코 선인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진실을 밝힌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정의 추구와 이하동문이라는 그의 신념? 만화의 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의 연속으로 맞이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여러 의문점이 떠올랐다.

이 사회의 현실의 정답은 결국 '힘'인가?
이장의 파워. "내 건들라믄 대한민국 대청소 해야 할끼야"라는 그의 당당한 외우침. 부정부패가 뿌리깊이 박힌 우리 사회의 극악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대사에 왠지 모를 전율이 일었다. 이장은 죽었지만 그는 아무런 반성도, 깨우침도 없었고, 죄에 대한 댓가도 치르지 않았다. 죽음은 그가 행해온 악의 역사에 비하면 가장 가벼운 처벌이지 않을까?

진실이 중요한 것인가? 진실을 추구하는 행동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편한대로 이대로 사는 게 나은 것인가?
류해국은 결국 궁극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자기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악의 근원을.. 그에게 남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그냥 또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뿐이라는 그의 캐릭터적인 특성만 유지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 해볼만한 것이... 이장은 우리에게 보여지기에.. 분명 악인이다. 악인은 맞지만.. 그의 죽음은 악의 소멸을 뜻하나? 그가 죽으면 추악한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것이 해결 되는가? 만약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채로 류해국이 죽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마을 이장의 죽음보다는 류해국의 죽음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일본 식민지 역사의 부끄러운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어두운 거짓으로 가려져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
친일과 친미,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무수한 '꺼삐딴 리'가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또다른 '만화 속 이장'이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함을 드러낸다. 그 이장은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이용하려는 정치인일 수도 있고, 정의라는 명목하에 자신만의 반사회적인 정의를 구현하는 떡.섹.검찰일 수도 있고, 공익과 사익을 구분하지 못하는 '쁘띠거니'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한 문장으로 요약했던 만화의 내용이 바로 이거다. 진실을 추구하든 거짓을 덮어두든, 들추어보나마나 결국에 드러나는건 '추악함'뿐이라는 것. 들추어보니 악이요, 가만히 있어도 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우리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만화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신념을 제시하는 듯 하다. 바로 '행동'하라는 것! 비록 남는 것은 없었지만, 행동이 결여된 우리의 현실의 결말이 부조리한 악(惡)일 뿐이라면, 행동하고 보자는 것이다. 행동한 다음에, 변화가 있을 것이고, 변화한 뒤엔, 우리가 추구하던 선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악이 존재할 수도 있다. 악이 존재하면 허무하지 않나? 아니.. 또 행동하면 된다. 그럼 또 변화가 있을 것이니까..

대승적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바로 '행동'이라는 것. 그것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는듯 하다.


슈ㅣ발.. 쓰고보니 길게도 썻네 -_-;; 만화나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오랜만에.


이글루스 가든 - 리뷰를 씁시다.(애니&만화책&소설)

새벽 일상

옆 공장 미싱돌리는 소리
잠 없는 아주머니 우렁차게 돌아가는 기계소리에 새벽 공기와 함께 요동친다
창문 틈 새어 나오는 바람소리
평원의 어둠 속에서 스며드는 한기는 무엇이 그리 한인지 거칠고 매몰차게 다가온다
컴퓨터 기계음
디지트와 함께 춤추는 매트릭스는 무언의 명령을 멋지게 수행한다
흑과 백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계(視界) 밖의 전기신호를 쏘아 올린다


주체는 주체이며 객체는 객체다
어쩔 수 없는 객체인 동시에 주체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에 종속 되어있는지도 모른채 운명과의 극명한 대립 속에 우연의 경계를 넘어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無였다
지금도 들려오는 저 새벽의 소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리고 신도 없다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오직 모를 뿐..
아무 것도 모르지만,
아무 것도 없지만,
존재하는 것.
내던져진 이 유목의 生 아니겠는가



이란의 '차일드 시네마'를 극복한 영화, 체리를 먹은 남자. 영화

포스터스틸이미지

<줄거리>

성불구로 고생하는 중년의 남자 ‘레자’는 고무공장의 가난한 노동자다. 그의 아내 ‘자리’는 임신하지 못하는 상황과 가난 때문에 가출한 뒤 레자에게 이혼과 지참금을 요구한다. 가정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고 거액의 지참금을 지불해야하는 레자는 회사의 사장님, 은행 직원, 노동자 동료들에게 대출을 받아보려 하지만 모든 게 신통치 않다. 레자는 얼마 전 회사에서 손가락을 잘려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을 받은 동료를 떠올린다. 레자는 자신과 친한 동료와 모의해서 자해공갈단과 비슷한 수법으로 차에 치여 보상금을 받아내려 한다. 결국 그는 벤츠 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한 채로 체리를 먹으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이란의 '차일드 시네마'를 극복한 영화, 체리를 먹은 남자.>

1주일 뒤면 중간고사 시험 3개에다 리포트와 발표만 해도 3개 이상인데 지금 나는 무엇에 홀렸는지 글만 써 내려간다. 바로 어젯밤, 8시 반에 시작한 영화 <체리를 먹은 남자>를 관람하였다. 리뷰를 쓰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부산 국제 영화제를 다녀온 것도 처음이었으며 이란 영화를 본 것은 더더욱 최초라고 말할 수밖에…. 대학교에서 영화 관련 일반교양 수업을 2개나 듣다 보니 이런 예기치 않게 운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영화를 파악하기 이전에 영화가 '시대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란의 사회적 배경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79년 회교혁명으로 팔레비 국왕 정권을 몰아낸 뒤, 이란영화는 검열의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정치적 사상을 포함해 서양의 개방적 에로티시즘에 대한 성향까지 검열의 대상이었으니 영화로 제작할 수 있는 소재라고는 기껏해야 권선징악형의 어린이 영화뿐이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이란의 영화들은 '차일드 시네마'화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페이만 하가니 감독의 <체리를 먹은 남자>에서는 한 단계 발전한 이란영화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페이만 하가니 감독은 ‘아이‘를 과감히 생략한다. 오히려 아이는 영화 전반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의 부재를 통해 어른 남녀 간의 갈등을 그림으로써 이란영화의 '차일드 시네마' 극복을 향한 고뇌적인 시선이 담겨있기도 하다. 시나리오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간단한 정도를 넘어서 진부하기 까지 하다. 남녀 간의 소통의 부재와, 가난의 고통, 그리고 불임에 의한 갈등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 남자주인공이 아내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지불해야하는 상황에 따른 절망적인 시선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란영화의 입장에서는 분명 한 단계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소재의 참신함과 다양성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위한 작가 주의적 경향을 찾아내기 보다는 현실감을 높여 다큐적 요소를 가미한 이란의 생생한 모습을 탐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살펴볼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촬영 기법을 통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과 이란의 생생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촬영에서 살펴볼 점은 세 가지, 흑백촬영, 탈중심주의, 그리고 롱테이크 기법이다.

 

일단 영화는 흑백으로 진행된다. 단 두 차례, 중간 말미와 마지막 장면에 컬러로 등장한다. 중간에 나오는 장면은 떠난 아내가 호화로운 집에서 싱싱한 체리를 물에 씻겨 한 움큼 손에 쥔 채로 갖다 주는 장면이며,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벤츠 차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기분 좋게 체리를 먹는 장면이다. 컬러 장면에는 모두 체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가혹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일어나지 않음직한 일들이다. 흑백은 현실의 생생함을 드러낸다고 할 때, 컬러가 나오는 장면은 주인공의 유토피아적 환상, 즉 주인공이 원하는 상황을 그려낸 장면이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 레자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레자의 죽음을 의미한다.

 

탈중심주의(post-centering)은 홍상수 감독의 특기다. 중심적 화면을 배제하고 겉 주변을 맴도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장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형화 되고 획일화된 장면연출에 대한 해체적인 성격을 가진 촬영 기법인데, 페이만 하가니 감독은 이러한 연출법을 두, 세 차례 사용한다. 고무 공장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 주인공이나 동료들의 얼굴보다는 식판을 촬영하며,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일부러 사고를 내는 장면에서는 다리 위 도로에서 주인공이 뛰어드는 장면이 아닌 다리 밖 바다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연출법을 통해 장면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연출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롱테이크 촬영은 감독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니 만큼, 긴 얘기를 천천히 관객들에게 전해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경험이 녹아져 나와 생생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할리우드식의 스펙터클한 장면들과 하나의 시퀀스 안에 수많은 신들과 컷들이 난무하는 영화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롱테이크를 지루함 없이 그저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며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지루함은 영상의 환상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습성 때문이지 롱테이크가 전해주는 생생한 리얼리즘적 요소의 잘못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감명 깊었던 부분은 내가 모르던 이란의 모습을 발견할 때였다. 현실 속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사건을 조금씩 엿보듯이 보여줌으로써 이란의 모습을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감독의 말을 참고해보면, 타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중동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맞서고 싶었을 감독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먼저 주인공 레자가 출퇴근 할 때, 출근 할 때는 카드로 기계에 인식시키고 퇴근을 할 때는 일일이 소지품 검사를 하며 혹여나 사내 물건을 훔치지 않았는지 검사하는 장면을 보고, 국가의 엄숙한 분위기 아래 감시활동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참금 의무제(이혼시 남성이 여성에게 주는 위자료)를 통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란 사회가 남녀평등을 지향하며 급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담배가게에서는 담배를 갑으로 팔지를 않고 개비 낱개로도 파는 것을 보고 작은 정보 하나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란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영화의 영향력과 파급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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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출신의 감독들이 와서 영화를 함께 감상한 뒤,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라는 이벤트를 통해 감독과 관중들이 질의 응답을 하며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다음은 내가 직접 듣고 작성한 GV 전문이다.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전문, Question & Answer

 

Q 체리는 감독의 개인적 의미가 담긴 것인지 이란 속 문화적 상징성을 내포한 것인지 궁금하다.

A 체리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모양과 색깔을 좋아하며 입맛에도 맞다. 체리를 먹을 땐 체리를 눈으로 보면서 맛을 음미하기도 한다. 내 개인적 의미로서 환상에 대한 상징을 심었다.

 

Q 영화 중간 중간에 손이 많이 등장하는데 손의 기능적 의미는 무엇인가?

A 의도적으로 많이 등장시켰다.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손은 삶의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러한 손의 중요성을 영화의 소재로 쓰고 싶었다. 영화 초반, 레자의 동료가 손가락이 잘리는 것도 그러한 맥락의 아이디어로부터 온 것이다.

 

Q 영화 마지막 장면에 여자의 모습이 스치듯 등장하는데 그 여자는 누구이며 어떤 의미인가?

A 그 여자는 레자의 부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은 컬러 장면이었는데 색깔을 입혀 주인공의 허구적 환상을 심었다. 여자 존재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Q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내 ‘자리’의 모습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데, 이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인권에 대해 궁금하다.

A 이란 사회는 급변하고 있으며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추세이다. 이란에는 지참금 문화가 있는데 이혼 후 남성이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위자료 같은 것이다. 지참금에 대해서 여성들은 강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란의 죄수들 중 일부는 이러한 지참금을 지급하지 못해 감옥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Q 벤치에 여자가 앉아있는 장면에 감독께서 카메오로 등장하는데, 카메오로 출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카메오의 영화적 기능에 대해 궁금하다. (내 질문 ㅎ)

A 나는 내 영화를 의도대로 연출하고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카메오로 등장할 때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리고 우연히 연기자가 촬영할 때 없어서 그냥 내가 연기 했는데,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잊어버리고 넘어감)

 

Q 롱테이크 기법이 많이 사용되는데, 의도적이었는지 궁금하다. 도 영화 소재 영감은 어디서 얻었으며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롱테이크는 영화의 중요장면 위주로 촬영했다. 레자가 교통사고를 당할 때, 직접적 장면보다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로 연출하였다. 전작 단편들에는 롱테이크가 별로 없었다. 첫 장편이라 관객들에게 천천히, 길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큐를 제작했던 경험이 녹아져 나온 것 같다. 영화의 이야기는 내 경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닐뿐더러 나는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남녀관계와 결혼 생활의 막대한 비중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고 나중에는 소통의 궁극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

 

Q 영화를 만들 때 국내 관객을 위주로 생각하고 제작하는가 아니면 국제 관객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가?

A 국제용으로 생각하고 만든다.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국내인들 보다 국제적 시각을 좀 더 염두에 둔다. 이란의 모습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담배를 파는 모습이나 여러 가지 생활 속 작은 이야기들을 영화에 담는다.

 

Q 영화에서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두 번 나온다. 쇼팽의 곡이었던 것 같은데, 클래식 음악은 이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영화 흐름의 유연성을 위해 음악을 사용했는가?

A 이란의 예술가들은 클래식을 즐긴다. 음악적 요소로 영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적게 삽입했다. 나는 쇼팽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이란 영화는 보통 이란 음악을 쓰지만 나는 이미 쓰였던 이란 음악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음향 전문가에게 부탁을 하면 돈이 많이 들어 무난한 클래식을 집어넣었다.

 

Q 영화에 식사 장면이 특히나 많이 나온다. 왜 그런지 궁금하고 결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 아까 마지막 장면을 컬러로 하여 허구적 환상을 심었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체리를 먹는 장면이 환상이라면 주인공인 레자의 계획은 실패했다고 해석해도 무방한가?

A 일단 나 자신은 삶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은 환상이 맞다. 영화의 첫 장면에 대한 완결성을 의미한다.




영화가 끝난 뒤, GV를 끝내고 감독에게 부탁을 해 조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감독을 또 다시 우연히 마주쳐 사진을 찍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 ^^;; 감독이 참 온순하고 부드럽게 생겼다. 인터뷰 도중에도 유머러스한 센스도 겸비한 듯 관중들을 매혹시켰었지.. 어쨌든,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로에의 여행이었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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