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성불구로 고생하는 중년의 남자 ‘레자’는 고무공장의 가난한 노동자다. 그의 아내 ‘자리’는 임신하지 못하는 상황과 가난 때문에 가출한 뒤 레자에게 이혼과 지참금을 요구한다. 가정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고 거액의 지참금을 지불해야하는 레자는 회사의 사장님, 은행 직원, 노동자 동료들에게 대출을 받아보려 하지만 모든 게 신통치 않다. 레자는 얼마 전 회사에서 손가락을 잘려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을 받은 동료를 떠올린다. 레자는 자신과 친한 동료와 모의해서 자해공갈단과 비슷한 수법으로 차에 치여 보상금을 받아내려 한다. 결국 그는 벤츠 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한 채로 체리를 먹으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이란의 '차일드 시네마'를 극복한 영화, 체리를 먹은 남자.>
1주일 뒤면 중간고사 시험 3개에다 리포트와 발표만 해도 3개 이상인데 지금 나는 무엇에 홀렸는지 글만 써 내려간다. 바로 어젯밤, 8시 반에 시작한 영화 <체리를 먹은 남자>를 관람하였다. 리뷰를 쓰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부산 국제 영화제를 다녀온 것도 처음이었으며 이란 영화를 본 것은 더더욱 최초라고 말할 수밖에…. 대학교에서 영화 관련 일반교양 수업을 2개나 듣다 보니 이런 예기치 않게 운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영화를 파악하기 이전에 영화가 '시대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란의 사회적 배경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79년 회교혁명으로 팔레비 국왕 정권을 몰아낸 뒤, 이란영화는 검열의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정치적 사상을 포함해 서양의 개방적 에로티시즘에 대한 성향까지 검열의 대상이었으니 영화로 제작할 수 있는 소재라고는 기껏해야 권선징악형의 어린이 영화뿐이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이란의 영화들은 '차일드 시네마'화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페이만 하가니 감독의 <체리를 먹은 남자>에서는 한 단계 발전한 이란영화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페이만 하가니 감독은 ‘아이‘를 과감히 생략한다. 오히려 아이는 영화 전반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의 부재를 통해 어른 남녀 간의 갈등을 그림으로써 이란영화의 '차일드 시네마' 극복을 향한 고뇌적인 시선이 담겨있기도 하다. 시나리오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간단한 정도를 넘어서 진부하기 까지 하다. 남녀 간의 소통의 부재와, 가난의 고통, 그리고 불임에 의한 갈등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 남자주인공이 아내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지불해야하는 상황에 따른 절망적인 시선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란영화의 입장에서는 분명 한 단계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소재의 참신함과 다양성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위한 작가 주의적 경향을 찾아내기 보다는 현실감을 높여 다큐적 요소를 가미한 이란의 생생한 모습을 탐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살펴볼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촬영 기법을 통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과 이란의 생생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촬영에서 살펴볼 점은 세 가지, 흑백촬영, 탈중심주의, 그리고 롱테이크 기법이다.
일단 영화는 흑백으로 진행된다. 단 두 차례, 중간 말미와 마지막 장면에 컬러로 등장한다. 중간에 나오는 장면은 떠난 아내가 호화로운 집에서 싱싱한 체리를 물에 씻겨 한 움큼 손에 쥔 채로 갖다 주는 장면이며,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벤츠 차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기분 좋게 체리를 먹는 장면이다. 컬러 장면에는 모두 체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가혹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일어나지 않음직한 일들이다. 흑백은 현실의 생생함을 드러낸다고 할 때, 컬러가 나오는 장면은 주인공의 유토피아적 환상, 즉 주인공이 원하는 상황을 그려낸 장면이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 레자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레자의 죽음을 의미한다.
탈중심주의(post-centering)은 홍상수 감독의 특기다. 중심적 화면을 배제하고 겉 주변을 맴도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장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형화 되고 획일화된 장면연출에 대한 해체적인 성격을 가진 촬영 기법인데, 페이만 하가니 감독은 이러한 연출법을 두, 세 차례 사용한다. 고무 공장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 주인공이나 동료들의 얼굴보다는 식판을 촬영하며,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일부러 사고를 내는 장면에서는 다리 위 도로에서 주인공이 뛰어드는 장면이 아닌 다리 밖 바다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연출법을 통해 장면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연출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롱테이크 촬영은 감독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니 만큼, 긴 얘기를 천천히 관객들에게 전해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경험이 녹아져 나와 생생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할리우드식의 스펙터클한 장면들과 하나의 시퀀스 안에 수많은 신들과 컷들이 난무하는 영화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롱테이크를 지루함 없이 그저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며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지루함은 영상의 환상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습성 때문이지 롱테이크가 전해주는 생생한 리얼리즘적 요소의 잘못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감명 깊었던 부분은 내가 모르던 이란의 모습을 발견할 때였다. 현실 속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사건을 조금씩 엿보듯이 보여줌으로써 이란의 모습을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감독의 말을 참고해보면, 타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중동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맞서고 싶었을 감독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먼저 주인공 레자가 출퇴근 할 때, 출근 할 때는 카드로 기계에 인식시키고 퇴근을 할 때는 일일이 소지품 검사를 하며 혹여나 사내 물건을 훔치지 않았는지 검사하는 장면을 보고, 국가의 엄숙한 분위기 아래 감시활동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참금 의무제(이혼시 남성이 여성에게 주는 위자료)를 통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란 사회가 남녀평등을 지향하며 급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담배가게에서는 담배를 갑으로 팔지를 않고 개비 낱개로도 파는 것을 보고 작은 정보 하나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란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영화의 영향력과 파급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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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출신의 감독들이 와서 영화를 함께 감상한 뒤,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라는 이벤트를 통해 감독과 관중들이 질의 응답을 하며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다음은 내가 직접 듣고 작성한 GV 전문이다.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전문, Question & Answer
Q 체리는 감독의 개인적 의미가 담긴 것인지 이란 속 문화적 상징성을 내포한 것인지 궁금하다.
A 체리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모양과 색깔을 좋아하며 입맛에도 맞다. 체리를 먹을 땐 체리를 눈으로 보면서 맛을 음미하기도 한다. 내 개인적 의미로서 환상에 대한 상징을 심었다.
Q 영화 중간 중간에 손이 많이 등장하는데 손의 기능적 의미는 무엇인가?
A 의도적으로 많이 등장시켰다.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손은 삶의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러한 손의 중요성을 영화의 소재로 쓰고 싶었다. 영화 초반, 레자의 동료가 손가락이 잘리는 것도 그러한 맥락의 아이디어로부터 온 것이다.
Q 영화 마지막 장면에 여자의 모습이 스치듯 등장하는데 그 여자는 누구이며 어떤 의미인가?
A 그 여자는 레자의 부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은 컬러 장면이었는데 색깔을 입혀 주인공의 허구적 환상을 심었다. 여자 존재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Q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내 ‘자리’의 모습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데, 이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인권에 대해 궁금하다.
A 이란 사회는 급변하고 있으며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추세이다. 이란에는 지참금 문화가 있는데 이혼 후 남성이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위자료 같은 것이다. 지참금에 대해서 여성들은 강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란의 죄수들 중 일부는 이러한 지참금을 지급하지 못해 감옥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Q 벤치에 여자가 앉아있는 장면에 감독께서 카메오로 등장하는데, 카메오로 출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카메오의 영화적 기능에 대해 궁금하다. (내 질문 ㅎ)
A 나는 내 영화를 의도대로 연출하고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카메오로 등장할 때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리고 우연히 연기자가 촬영할 때 없어서 그냥 내가 연기 했는데,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잊어버리고 넘어감)
Q 롱테이크 기법이 많이 사용되는데, 의도적이었는지 궁금하다. 도 영화 소재 영감은 어디서 얻었으며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롱테이크는 영화의 중요장면 위주로 촬영했다. 레자가 교통사고를 당할 때, 직접적 장면보다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로 연출하였다. 전작 단편들에는 롱테이크가 별로 없었다. 첫 장편이라 관객들에게 천천히, 길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큐를 제작했던 경험이 녹아져 나온 것 같다. 영화의 이야기는 내 경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닐뿐더러 나는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남녀관계와 결혼 생활의 막대한 비중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고 나중에는 소통의 궁극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
Q 영화를 만들 때 국내 관객을 위주로 생각하고 제작하는가 아니면 국제 관객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가?
A 국제용으로 생각하고 만든다.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국내인들 보다 국제적 시각을 좀 더 염두에 둔다. 이란의 모습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담배를 파는 모습이나 여러 가지 생활 속 작은 이야기들을 영화에 담는다.
Q 영화에서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두 번 나온다. 쇼팽의 곡이었던 것 같은데, 클래식 음악은 이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영화 흐름의 유연성을 위해 음악을 사용했는가?
A 이란의 예술가들은 클래식을 즐긴다. 음악적 요소로 영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적게 삽입했다. 나는 쇼팽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이란 영화는 보통 이란 음악을 쓰지만 나는 이미 쓰였던 이란 음악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음향 전문가에게 부탁을 하면 돈이 많이 들어 무난한 클래식을 집어넣었다.
Q 영화에 식사 장면이 특히나 많이 나온다. 왜 그런지 궁금하고 결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 아까 마지막 장면을 컬러로 하여 허구적 환상을 심었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체리를 먹는 장면이 환상이라면 주인공인 레자의 계획은 실패했다고 해석해도 무방한가?
A 일단 나 자신은 삶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은 환상이 맞다. 영화의 첫 장면에 대한 완결성을 의미한다.


영화가 끝난 뒤, GV를 끝내고 감독에게 부탁을 해 조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감독을 또 다시 우연히 마주쳐 사진을 찍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 ^^;; 감독이 참 온순하고 부드럽게 생겼다. 인터뷰 도중에도 유머러스한 센스도 겸비한 듯 관중들을 매혹시켰었지.. 어쨌든,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로에의 여행이었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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